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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상해 일기

[2020.9.5]격리 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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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5:30 기상이다

군대도 아니고

이럴 땐 늦잠 좀 자야 되는 거 아닌가

여군 체질이다 난..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설화수에서 받은  샘플 스킨, 로션도 듬뿍 바르고

옷도 잠옷에서 원피스를 갈아 입고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에 듣기 좋은 음악도 잔잔하게 틀어 놓는다

 남아 있던 레모나에 날짜를 적어 본다

오늘이 9월 6일이니 7개 딱 맞다

하루에 하나씩 먹으면서 격리해제의 날을 기다려 본다

 

오늘이 토요일인데 중국 학교에서는 방송이 들린다

여긴 주 5일제가 시행되지 않았나?

 학생들이 건물에서 나와 어딘가로 이동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이라는 제도를 거쳐서 사회로 나온다

나는 어떤 교육을 받았나

아무 생각 없이 학교를 다닌거 같다

따지지도 묻지도 않은 그 시간들.

아니 열심히 살았을것이다

말 잘 듣고 하라는 거 잘 따라 하는 그런 평범한 학생으로

 

고3 때 어떤 아이의 질문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야간 자율학습을 다하라는 지시에

" 선생님. 이건 대학 갈 아이들 위한 거잖아요.

저는 대학을 안 갈 건데 왜 해야 하나요

인문계라고 다 대학을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왜 우리를 위한 배려가 없나요?"

나는 생각도 안 했다

당연히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야 된다고 생각을 했던 터라

그 친구의 질문은 나에게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회의 불의를 보면서 나 몰라라 하지 않고

왜 이러냐고 물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갑자기 그 친구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삶은 고구마가 올라왔네...

팍팍한 내 마음에 우직 우직 고구마를 넣어본다

 

바깥바람이 쐬고 싶어서

창문을 열어본다

많이 열리지도 않는 창문

겨우 바깥공기가 조금 들어온다

격리생활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바깥공기가 선선하고 좋다는 걸 깨달았을까.

오른손을 꽉 잡고 있어야 된다

고정되는 게 없다

팔이 아프다

 

생활이 단조롭다

만나는 사람도 없다

빨래도 청소도 아무것도 안 한다

넣어주는 도시락만 먹을 뿐이다

 

옆방의 사람 소리가 들린다

아니 격리시설에서 저렇게 왕래해도 되는 건가?

같이 온 일행이 모였나?

어떤 이야기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두런두런 소리가 벽을 타고 들린다.

 

격리는 온전히 나와의 시간이다

나와의 대화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 14일이 나를 부패시킬 것인지

성숙시킬 것인지는

나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나의 결정에 달려 있다

한나가 아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통곡하는 장면을 잔잔하게 적어 준 책.

 

나의 결핍이 기도가 된다

나의 부족이 바람이 된다

 

기도가 토해진다는 걸 이번에 비행기 타면서 느꼈다

웬만큼 막히면 토해지지 않는다

꽉 막혀서

문제 투성이. 아픔 투성이. 어느 틈 하나 없이 꽉 막혔을 때

탁 토해지는 그것.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 정도 믿을만한 구석들이 있다

그러니

온전히 엎드리지 못하는지도...

 

18층 격리시설에 있어보니

느낀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나는 이 소중함이 무엇인지 잊혀지지 않기를 

이후

땅에 발을 딛고 살때도 

그 어느 때든 잊지 않도록

바라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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