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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4]격리 5일차 밤늦도록 뒤척이다가 아침에서야 푹 잤다 체온 체크하러 오니 몸이 자동으로 깼나 7:50이다 유튜브도 되니 아침에 듣기 좋은 음악을 틀었다 150곡이라니 종일 틀어 놔도 되겠네.. 뜨거운 물로 샤워도 하고 혼자 있다고 대충 있어선 안된다는 건 정해진 규칙도 아닌데 나만의 규칙이다. 독일의 수용소에서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 놓았을 때 두부류의 사람이 있었다고 하지 한부류는 곧 죽을 거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부류는 그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고 저항했다는 것 그것을 표현한 것이 씻는 것이라고 아주 적은 양의 물인데도 반은 마시고 반으로 얼굴을 닦아 냈다고 하네 더러운 사람들을 해치고자 할 때는 들지 않는 양심이 얼굴을 닦아내어 인간임을 드러낸 부류를 해치고자 할때는 양심이 들었다 하지 않나.. 여기는 수용소는 아..
[2020.9.3]격리 4일차 아직도 푹 못 자고 밤에 몇 번 깨는 건 편하지 않단 뜻이겠지.. 어김없이 8시면 체온을 체크하고 36.4도 아침식사를 먹고 고민 없이 주는 식사도 나름 좋다 매번 뭘 먹어야 할지 결정하기도 쉽지 않은데.. 음 목요일이구나.. 날짜도 시간도 감이 없어지면 안 되는데.. VPN 없어도 괜찮다 그냥 다운로드한 드라마 보면 된다 했는데도 굳이 다른 나라 클릭해서 한번 해보라는 사정 아닌 사정에 못 이겨 홍콩도 눌러보고 미국도 눌러보고 모두 딱 저기에서 멈추어 선다 1분이 아니라 몇 분을 기다려도 저 자리다 연결할 수 없다는데 내가 어찌하랴 기계치인 나는 별 불편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일본을 한번 눌러봤다 위치도 멀고 될까........ 연결된 건가.. 연결됨 이라니 그럼 한번 유튜브를 켜 볼까 으악.........
[2020.9.2]격리3일차 나이가 들었나 보다 아침잠이 없다 처서도 지나갔으니 가을이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지 않은가 한국서 사온 책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한번도 안 읽었네. 오늘은 책도 읽고 좀 그렇게 보내야 되지 않으까.. 아침부터 어제 보던 드라마 연결했음 오늘 안에 16회 끝났지. 멀리서 소리가 들리네 오늘은 아이들이 줄을 안 서 있고 30명 정도 그룹을 지어 움직이네 뭐지.. 20분 이상을 구령에 맞추어 체력단련인가.. 다 하고 나니 학생 중 대표들이 나와서 무슨 피켓을 반납하고... 뭔지 모르지만 얘네들은 일찍 등교해서 활동하고 수업을 받으러 가는데 한국서는 온라인 수업에 활동도 못하고.. 고2,고1 조카들이 학교도 못가고 밤낮도 바뀌고 게임만하고. 동생이 마음 졸일 생각에 맘이 짠하다 . 8:00 딩동 체온 재러 왔다..
[2020.9.1] 격리 2일차 아. 몇 시지 5:30?? 이거 사실임? 왜 눈이 빨리 떠지는 거야 아침밥 해 먹이고 학교 보낼 아이도 출근할 남편도 없는 이 격리 기간에는 늦잠을 자야지... 이불을 뒤집어 잠을 청했지만 머리만 맑아진다 그래 일어나자 나의 격리 2일 차가 나도 궁금하다 자. 식전 약부터 먹자 씬지로이드 0.05mg 너도 참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구나 20년 전 과도한 스트레스로 찾아온 갑상선 기능 저하증... 심하면 0.1mg 먹다가.. 수치가 좀 좋아지면 0.05mg으로 왔다 갔다 하며 일도 안 하고 스트레스 없으니 안 먹고 지냈더니 아니었다.. 호르몬의 이상이 온걸 내가 먹고 안 먹고를 결정하는 건 잘못이었다 그래 내 일부다 약기운으로 사는 건가?? 도움을 받는 거겠지.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주범이라 했던가 근데 ..
[2020.8.31]격리1일차 너무 피곤해서인지 약 기운인지 10시간을 잤다 속도 편안해졌다 근데 머리는 띵하고 어질어질하다 짐도 정리 안 하고 엉망이다 나 혼자 격리인데 짐을 정리해야 하나 처럼 그냥 막 던져 놓고 지내보까 하다가 일단 아침밥을 먹고 뭘 하든 해야겠다 8:00 똑똑 아침밥이 왔다 흰 죽이 나왔네 계란도.. 영양을 위해 챙겨 먹자 중국 소시지는 아예 손이 안 간다 그나마 옥수수 삶은 건 먹을만하다 역시 속이 든든해야 의욕이 생기나 보다 자연인도 좋지만 물건이 어디에 있나 좀 보자 싸들고 온 약들이며 컵라면이며 제자리에 놓아야 꺼내 먹기도 편하겠지 두 가방에 잘 정리해봤다 격리 시설답다 물도 휴지통도 예사롭지 않다... 노란 봉투는 매끼 밥을 다 먹고 나면 담아서 밖에 내놓는다 봉투가 엄청 커서 사람이 들어가도 될 크기..
[2020.8.30] 중국입성기 (남경) 솔직히 어제 쓸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동으로 쓸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오늘부터 중국으로 온 거를 올려봐야겠다 뒤돌아보니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오늘 한번 다시 생각해보고 적어본다 아침 7:00 나의 사랑하는 여동생이 공항까지 태워주겠다는 걸 굳이 공항버스로 간다고 버스터미널까지만 태워달라 했다.. 고맙다. 원룸도 공짜로 살게 해 주고 항상 나의 뒷일을 도맡아 준 동생. 복 받을 거다 7:45 공항버스로 이동하여 인천터미널 T1 도착하니 9:00 좌석 설정을 안 했기에 부랴부랴 앞좌석을 구하려 했더니 웬걸 겨우 55F 거의 뒷자리다 저울로 무게를 확인 안 한 짐은 17KG이다. 23kg 된다는데 더 넣을걸 를 유심히 보며 날짜까지도 체크한다... 앱을 깔라며 출국 전까지 다 입력하란다 그 이..
[2020.8.29]내일은 짐 가득한 수화물 캐리어 20kg와 기내용 캐리어를 끌고 어깨에는 노트북과 중요품을 넣은 백을 메고 고성능 차단 필터를 장착한 KF94 하얀 마스크를 끼고 나갈 것이다 버스터미널에 7:45 인천공항 가는 표를 예매하였기에 7:00경에는 나가야 되지 않을까... 미리 가서 앉아 있는 나에게는 영락없는 엄마의 모습이 그대로 있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니 버스 안에서 뉴스를 보며 코로나 상황과 의료인의 파업과 이런저런 궁금함을 달래 봐야겠다 인천공항 도착해서는 먼저 좌석을 앞좌석을 요구해야겠다 아무래도 뒷좌석은 대기 시간이 길지 않을까 이 또한 나의 조급함이 내린 생각이지만 앞 좌석이 있을까 싶다 다들 마음은 비슷하니까 에서 서로 정보를 주고받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 2미터 간격을 띄우고 인사를 할 수..
한국 지인들에게 문자를 남겼다 이제 8월 31일 자로 한국 핸드폰이 정지 들어간다고 그러니 연락이 안되더라도 걱정 말라고... 최소한 그 정도는 알리고 떠나고 싶었다 1월 24일 잠깐 들어온 한국의 생활 속에서 만났던 지인들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른다 초등학교 친구 지영이 고등학교 친구 현희 직장동료 여숙님 미정님. 혜경님. 수정님. 연숙님. 연분님. 순선님. 아들 친구 엄마 지연님 ..... 그들과의 만남 속에서 그들의 인생을 보았고 그들의 대화 속에서 아픔과 어려움을 엿볼 수 있었다 그 누구 하나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이가 없다는 걸 나는 마치 나그네처럼 왔다가 나그네처럼 간다 마음속에는 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품고. 돌아가서 살게 될 그곳에서 이들의 삶이 궁금할 것이다 그리울 것이다 생각날 것이다 그리움의 대상이 ..
[2020.8.28] 전화 한 통화가 어제 오후에 왔었지 한림대 갔다가 전철로 이동 중에. 상해서 알게 된 지인 "아직도 한국이에요?"로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는 일방적으로 자기 속내를 꺼내놓기 바빴다 간호사 출신이던 그녀가 상해 가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남편의 주재 기간이 끝나고 2019년 한국에 나오면서 그녀도 일을 알아봤다고 그리고 지금 고등학교 기간제 보건 선생님 일을 하게 되었다며 " 저 일 못하겠어요... 일은 얼마나 많은지 애들은 수업시간에 다 자고 보람도 없고 올 12월까지 계약인데 내일 당장 안 하겠다고 말하려고요" 전철 안에서 나는 듣기만 했다 마스크를 한 채 말을 하기도 잘 들리지도 않을 것 같아서.. 그녀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 나 교장도 교감도 얼굴 잘 모르는데 무슨 결재를 맡아 오래요... 난 그냥 단순한..
위로라는게 때론 위로받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 상대방의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저는요.. 이번에 일이 생겨서 한번 할 일을 두 번이나 했어요" 라고 말했는데 "제 주변에는 한번 할 일을 세 번 한 사람도 있더라고요" 짧은 대화였는데 큰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이 정도 손해 봤다 그런데 나보다 더 손해 본 사람을 보고 위로받고 나는 이 정도로 힘들다 그런데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보고 위로받고 나는 이 정도 가졌다 그런데 나보다 더 적게 가진 사람 보고 위로받고 위로란 결국은 나에게 이렇게 알려주는 거네 너보다 다른 사람이 더 손해보고 더 힘들고 더 가지지 못했음을